교계소식

3남 5녀의 아빠, 김밥집 사장… “복음 안에서 자유로운 자연인!

천사의 기쁨 2021. 1. 9. 00:20

제주도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김다윗 목사가 지난달 서귀포 안덕면 가게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했다. 왼쪽부터 마리아, 다리아 사모, 아도니아, 라라, 다윗, 에클레시아, 김 목사.

베스트셀러 작가, 3남 5녀의 아빠, 김밥집 사장, 성악가, 선교사, 치유사역자. 김다윗(61) 목사를 수식하는 말이다.

김 목사는 오정현 서울 사랑의교회 목사의 부친이 담임하던 부산 가야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고신대 종교음악과 입학 후 부산의 한센병 마을에서 사역하다 섬마을 전도사로 헌신했다. 1991년에는 러시아 선교사로 파송됐다.

그는 러시아에 도착 후 모스크바 국립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입학했다. 학교만 졸업하면 한국의 교수 자리를 얻을 수도 있었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유학 생활과 선교사의 삶을 병행하려 했지만 아내와 의견충돌이 끊이지 않아 결국 이혼했다. 현지에서 강도를 만나 죽기 직전 ‘살려만 주신다면 주님의 일만 하겠다’고 서원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96년 한국으로 철수한 그는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세 아들을 키우며 기도하던 중 ‘러시아에 가서 새 배우자를 데리고 오라’는 응답을 받았다. 그런데 환상 중에 본 여성은 18세 학생이었다. 자그마치 스무 살 차이가 났지만, 러시아행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두 번째 아내인 주르카노바 다리아 파를로브나(41)를 맞았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98년 경남의 기도원을 거처 삼아 설교사역을 할 때 일이다. 아들 중 하나가 물웅덩이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김 목사는 “당시 아이 이름이 다윗이었다. 그때부터 이름을 다윗으로 바꾸고 아이의 몫까지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일본 성서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아프리카 케냐 신학교 교수로 파송받았다. 셋째가 태어났는데, 아나스타시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러시아어로 부활이라는 뜻이다.

안정적으로 교수사역을 하는데, 또다시 하나님이 시베리아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 목사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러시아에서 뼈저리게 체험했기에 즉시 순종했다”면서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를 타고 시베리아 바이칼호수 근처 이르쿠츠크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성공회 부산교구에서 활동하던 그는 싱가포르 트리니티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마리아가 태어났다. 귀국 후 포항 성공회교회로 발령을 받았다.

포항 바닷가의 오두막에서 자녀 8명이 영어로 성경을 줄줄 외우는 모습이 2006년 KBS ‘인간극장’에 5부작으로 소개됐다. 이것이 계기가 돼 ‘마가복음 통째로 외우기’라는 책을 쓰게 됐고 10만부나 팔렸다.

그는 8명의 자녀 모두 기독교 홈스쿨링으로 키웠다. 간혹 학교에 가고 싶다면 병원이나 우체국 활용하듯 그렇게 활용했다.

첫째 아들 필립(32)은 프로골퍼가 됐고 둘째 다니엘(30)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셋째 아나스타시아(23)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연기를 공부하고 있으며, 넷째 다윗(21)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싶어한다. 다섯째는 마리아(17), 여섯째는 에클레시아(15), 일곱째는 아도니아(14), 막내는 라라(12)다.

첫째 필립은 “우리는 가난했지만 늘 부유했다. 늘 함께 다니고 현실보다 항상 꿈을 이야기했다”면서 “어려운 고비마다 가족과 신앙이라는 틀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일곱째 아도니아는 “아버지는 늘 ‘세상에서 아빤 널 가장 많이 사랑해’라는 말을 해줬다”고 했다.

김 목사 가정은 필리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지난해 제주도에 정착했다. 그가 지난 5월부터 시작한 것은 교회가 아닌 김밥집이다. 서귀포 용머리해안 삼방산 끝자락의 상가에 막내의 이름을 따서 라라김밥이라는 가게를 차렸다. 주일엔 이곳이 뉴크리에이션네트워크 교회로 바뀐다.

김 목사는 “많은 목회자는 교회가 부흥해야 성공한 것이고 부흥하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은연중에 배어 있다”면서 “목회자는 이런 생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 관점에선 교회를 세운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목회자도 교회가 어려우면 얼마든지 김밥집을 할 수 있다. 교회에서 월급을 받기보다 자기 먹을 것은 땀흘려 자기가 챙길 수도 있다”면서 “자신이 세운 목회 목표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너무 패배의식에 빠지지 말자”고 했다.

라라김밥은 신선한 해산물과 건강에 좋은 비트를 쓴다. 김 크기만 한 넓은 지단을 넣기 때문에 코로나19의 불경기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다리아 사모는 “주변 가게들이 장사가 안 돼 무척 어려워한다. 그래서 수시로 김밥을 싸서 식사라도 하라면서 살짝 건네고 있다”면서 “이런 게 하나님의 일 아니겠냐”고 웃었다.

김 목사는 제주 ‘자연인’에 가까웠다. 그는 “신앙생활조차 자신의 노력으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삶을 힘들게 한다”면서 “자식 걱정도 많은데 코로나19로 우울증과 두려움까지 겹쳤다. 모두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인데, 복음 안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하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면서 “나처럼 아이가 많아도 안 굶는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교회 보증금을 날리더라도 죽지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했다.

김밥집에 이어 그의 또 다른 목표는 제주에 자연치유센터를 여는 것이다. 물론 혼자 일할 생각은 없다.

서귀포=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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