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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유명인사 된 ‘복서’ 임애지 “착하게 살기로 했어요!

천사의 기쁨 2020. 11. 12. 01:02

임애지가 10일 충북 진천선수촌 복싱훈련장에서 진지한 눈빛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랜만에 학교에 갔더니 ‘(올림픽) 티켓 딴 애 아니야?’ 이렇게 다 알고 있어서 놀랐죠.”

10일 충북 진천선수촌의 복싱 훈련장. 복싱 대표팀 유일의 ‘대학생 복서’ 임애지(21·한국체대)는 훈련복이 땀으로 축축해질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에 몰입하고 있었다. 코치의 미트를 쳐다보는 매서운 눈빛,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가벼운 스텝과 빠르고 묵직한 펀치까지. 투기종목 선수다운 강렬한 아우라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임애지의 이런 진지한 훈련 태도는 지난 3월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여자 페더급(57㎏급) 경기에서 보여준 ‘깜짝 활약’을 가능케 했다. 임애지는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 여자복싱 사상 첫 올림픽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라이트급(60㎏) 금메달을 획득해 티켓을 확보한 오연지(30·울산광역시청)와 함께 현재까지 올림픽행을 확정지은 복싱 대표팀의 유이한 선수가 된 것.

그렇다고 임애지가 천생 파이터 같은 과묵하고 터프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이날 훈련이 끝난 뒤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임애지는 복싱 링 밖에선 영락없는 대학생으로 돌아왔다. 예선전 이후 오랜만에 즐긴 ‘캠퍼스 라이프’를 설명하던 임애지의 눈빛은 초롱초롱해졌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는데, 같이 운동장 산책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 생활이 너무 재밌었어요. 매일같이 운동만 하다 보니 친구들과 뭐 먹자 약속만 하고 못 지켰는데, 기숙사에서 떡볶이 치킨 피자 마라탕 같이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배달시켜 배불리 먹기도 했죠.”

올림픽 티켓을 따낸 뒤 달라진 점을 묻자, 임애지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운 대답도 내놨다. “학교에서 저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 뒤엔 쓰레기도 잘 버리고 착하게 살아야지.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야지 다짐하게 됐어요.”

임애지는 유소년 시절 세계랭킹 1위까지 경험한 선수지만 2018년부터 나선 성인 무대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유소년과는 체격 조건부터 달랐던 성인 선수들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 티켓 획득은 성인 무대에서 경쟁하는 임애지의 ‘전환점’과 같았다.

하지만 임애지는 들뜨지 않고 지금 해야 할 훈련에만 열중하고 있다. 운에 기대기보단 실력을 키워야 한단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대학교에서도 캠퍼스 생활을 단지 즐기기만 한 건 아니다. 경량급 남자 선후배들과 꾸준히 스파링을 하며 실전 감각을 유지했고, 운동역학이나 육상·수영·웨이트 등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체력 유지에 힘썼다. 그는 “메달을 딸 거란 확신도 없었고 운 좋게 땄다고 생각한다”며 “부담감을 갖기보단 하루하루의 훈련에 열중했을 때 성적이 잘 나오기에 선생님들이 알려주시는 대로 열심히 따라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함께 올림픽에 나가는 ‘여자복싱 간판’ 오연지의 존재도 임애지에겐 큰 힘이 된다. 임애지는 “연지 언니에게 운동할 때 궁금한 걸 물어보고 스트레칭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올림픽 출전’에 대한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 8개월여 남은 올림픽을 벌써부터 기대하다보면 훈련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임애지가 도쿄에서 바라는 건 ‘메달’ 자체가 아니다. ‘수긍할 만한 결과’다. “설령 (메달을) 못 따더라도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아직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대한 몸을 만들고 열심히 훈련해 볼 생각입니다.”

진천=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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