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기독교총연합회와 부천시동성애대책시민연대 등 105개 단체 회원들이 지난 21일 경기도 부천시의회 인근에서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한 채 시의회의 인권조례 입법시도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국민일보DB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실체를 깨달은 국민의 제정 반대 여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동성애·트랜스젠더리즘 법제화 운동 측은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니 차별금지법’이라고 불리는 ‘차별금지조례’를 제정함으로써 국회에서 막힌 차별금지법의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치사무에 관한 내용을 정하는 자치법규가 조례인데, 이를 통한 차별금지 법제화를 시도하는 전략이다.
전주시의회는 지난 1일 ‘전주시 차별금지 및 평등권 보호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다. 22명의 시의원이 공동 발의한 이 조례안은 입법예고를 통한 의견수렴 절차도 진행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상위법인 차별금지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하위법인 차별금지조례안을 먼저 발의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하위법인 조례는 반드시 상위법인 법령에 근거해야 하고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제정하게 돼 있다. (지방자치법 제22조 전문) 이에 아랑곳없이 ‘시의회에서 다수로 밀어붙이면 무슨 법이든 만들 수 있다’는 식의 무법천지가 된 느낌이다. 그러나 ‘나쁜 차별금지법 반대 전북 연합’과 전주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시의원들에게 조례안의 문제점을 알린 결과, 지난 15일 열린 전주시의회 행정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부결됐다. 시민들의 노력으로 법치주의가 기사회생한 것이다.
지난달 12일 서울시의회에서는 유사 차별금지법인 ‘서울시 혐오표현 피해방지에 관한 조례안’이 발의됐다가 서울시민들로부터 700건 이상의 반대 의견을 받았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였다. 지난 3일 시의회 행정차지위원회는 이 조례안에 대해 심사를 보류했다.
조례를 통한 차별금지 법제화 시도의 역사는 오래됐다. 성 평등 조례, 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 등이 대표적이다. 누군가 표준안을 만들어 보내준 듯이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경북 구미시장이 지난 7월 29일 발의한 ‘구미시 성별 영향평가 조례안’에는 동성애, 트랜스젠더리즘, 제3의 성이 포함되는 ‘성 평등’(gender equality)이 담겨 있었다. 구미시 학부모 한 명이 이를 막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시의원들에게 조례안 반대를 요청했다가 폭언과 조롱을 받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친구와 이웃들의 도움으로 1인 시위를 이어갔고 알음알음 몇몇 언론사에 보도를 요청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대로 이 조례안은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반대 12 찬성 10으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정을 살리고 아이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며 애쓰는 분들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탱해 주고 계신다.
언제나 ‘해피 엔딩’은 아니다. 부천시의회는 지난 4일 ‘부천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는데, ‘인권’의 범위에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리즘이 포함됐다. 이 같은 안은 지난해에도 발의됐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철회됐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옥외집회가 금지된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인권 조례안이 발의됐다. 시민들은 조례안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한 집회 신고를 했는데 경찰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집회를 불허했다. 시민들은 긴급하게 집회금지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다행히 인천지법은 이를 인용했다. 시의회는 밖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의 반대 집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기어이 조례를 통과시켜 버렸다. ‘코로나’ 세 글자에 ‘공정’과 ‘정의’가 묻혀 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제주도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안’이 발의됐지만, 다행히 지난 23일 도의회에서 ‘심사보류’ 처리됐다. 동성애 등이 포함된 국가인권위원회법상의 차별금지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신설되는 인권옹호관에게 수사기관의 수사가 종결되더라도 조사를 강행할 수 있도록 재량을 부여한 것은 매우 우려스러웠다. 만약 조례안이 제정됐다면, 학생들의 무고로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음에도 전북도교육청 인권센터가 무리한 조사를 계속해 극단적 선택을 한 상서중학교 교사와 같은 사건이 제주도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난해 도내 모든 학교와 종교단체와 기업에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강요해 논란이 된 ‘경기도 성평등 조례’는 ‘양성평등’으로 전면개정을 요구한 도민 17만7000명의 서명이 지난 4월 제출됐다. 최근 도청에서 처리돼 도의회로 이전된다는 통지를 받았다. 경기도 주민들의 조례개정 청구가 몇 번 있었지만 실제로 법적 서명 요건을 달성해 처리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도 내 자식 살리겠다는 학부모들의 열의를 꺾지는 못했다.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컨테이너에 모여 서명지 분류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근대 민주국가에서 대의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이 민의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나서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기저귀를 찬 아이를 둘러업고 길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은 학부모, 시간을 쪼개 도청 앞에 나가 1인 시위를 한 취업준비생,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병원에서 서명지를 돌린 환자, 이들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이다.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전윤성 미국 변호사(자유와 평등을 위한 법 정책 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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