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이 15일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V-리그 여자부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서 서브를 넣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뭐가 과격한지) 명확하게 규정된 건 아니지만, 과정을 살펴보고 심판들이 적절한 제재를 해야 하는데 못했다는 거죠.”(KOVO 관계자)
한국배구연맹(KOVO)이 최근 선수들의 ‘과격 행동’이 ‘불문율’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직접 판단하길 자처하면서, ‘과격 행동 논란’을 스스로 촉발시켰다. 그리곤 무엇이 과격한 행동이어서 불문율에 어긋나는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KOVO가 논란을 촉발한 행위에 대해 사과하거나, 과격 행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KOVO가 논란을 키운 건 지난 11일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경기에서다. 이 경기에서 강주희 심판은 공격이 상대 블로킹에 막히자 네트를 잡아끌며 분노를 표출한 김연경의 행위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김연경의 행위가 ‘세트 퇴장’감은 아니었던 데다, 레드카드를 줄 경우 경기가 심판 판정에 의해 끝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후 KOVO는 강 심판에 제재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심판이 어떤 판정을 내려야 했는지에 대해선 해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16일 국민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그나마 KOVO에선 “레드카드나 세트 퇴장을 줬어야 했다”는 공식 해답을 내놨다. 하지만 둘 중 뭐가 정답인지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KOVO도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복수의 심판은 이런 답변에 대해 “휘슬을 불어본 적도 없는 사람의 대답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KOVO가 답을 모르는 이유는 불문율에 대한 판단을 그동안 심판 재량에 맡겨 왔기 때문이다. 과한 세리머니를 한다거나, 네트를 잡아당기거나, 코트에 공을 때리는 선수들의 감정 표현 행위가 불문율에 어긋나는 과격 행동의 예시다. 그런데 불문율은 명문화된 규정이 아니다. 국제배구연맹(FIVB)이나 KOVO 규정에도 기준이 없다. 선수들의 특정 행동이 불문율에 어긋날 정도로 과격한지에 대한 판단은 심판이 했다.
그런데 KOVO는 심판의 재량에 메스를 댔다. 기준도 모호한 불문율을 어겼는데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김연경의 행위에 대해 상대편의 반발이 나오고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이 케이스에서만 유독 KOVO가 ‘판관’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심지어는 전 구단을 상대로 ‘과격 행동 방지’ 공문까지 보냈다.
그렇다면 뭐가 불문율에 저촉되는지 KOVO가 명확한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미 심판을 제재해 판정에 대한 권위를 KOVO 스스로 빼앗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불문율이 애매해서다. KOVO 관계자는 “딱 잣대를 잘라서 여기까진 되고 안 되고 하는 게 안 될 수도 있다”며 “상황에 따라 달라서 규칙을 만들어 벌주고 그런 건 아니고, 칼 자르듯이 하는 게 아니”라고 단호히 밝혔다.
KOVO는 논란을 자초하고도 ‘좋은 게 좋은’ 방식으로 넘어갈 생각인 것처럼 보인다. 17일 열린 감독·심판 회의도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단 후문이다. A 심판은 “기준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 논란 원인을 제공한 KOVO는 뒤로 물러선 채 판정 논란 장면을 틀어놓고 이건 감독이 잘했다, 저건 심판이 잘했다고 말하는 자리였다”며 “감독들은 목숨을 걸고 임하는데, KOVO에선 ‘(판정이 잘못되면) 서운하시죠’란 식으로 말해 감독들이 콧방귀를 뀌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B 감독도 “실수했거나 문제가 생기면 인정하면 되는데, KOVO는 좋게 넘어가자, 이해해달라는 식으로 책임을 안 지려 한다”며 “현장과 괴리감이 있는 KOVO 개입으로 감독·선수·심판이 항의·세리머니·판정에서 모두 조심하면 리그 자체의 경기력도 안 나오고 볼거리도 제공되지 못할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KOVO가 일련의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선 논란을 촉발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심판의 권위를 세워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C 구단 관계자는 “불문율은 정의할 수가 없다”며 “심판에 자격을 줬으면 (KOVO가) 현장 심판의 판단과 권위는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뭐가 불문율인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유례없는 과격 행위 가이드라인이 국제적인 비웃음거리가 되더라도 말이다. D 감독은 “심판이 어떤 상황에서 제재해야 하는지 KOVO가 사례별로 규정을 만든다면 감독·선수들도 자제하고 얼굴 붉힐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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